
💬 개인회생 스토리 “게임에 빠져 무너졌지만, 다시 제 삶을 되찾았습니다”
안녕하세요. 오늘은 제 인생의 가장 부끄럽고, 동시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.
바로 **‘개인회생’**을 통해 다시 제 삶을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하게 된 과정입니다.
저는 대전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중견기업에 다니고 있는 6년 차 직장인입니다.
이 글은 “누군가 나처럼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면, 조금이라도 늦기 전에 멈출 수 있었으면” 하는 마음으로 적습니다.
🧩 5년 전, 이혼 후 혼자 남게 되다
지금 돌이켜보면 제 인생이 무너진 건 이혼 이후부터였습니다.
그전까지만 해도 결혼생활 속에서 경제적인 계획을 세우며 살았는데, 혼자가 되니 처음엔 묘한 자유로움이 느껴졌어요.
아이 양육은 대부분 제가 맡았지만, 그 외의 시간에는 **“이제 내 인생 좀 즐겨보자”**는 마음이 컸습니다.
그때 마침 직장에서도 성과가 좋아 성과급도 받고, 여유자금이 조금 생겼죠.
그런데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.
🎮 게임의 유혹, 그리고 1억 5천만 원의 ‘현질’
회사 선배 몇 명이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“같이 하자”고 권했습니다.
리니지 계열의 게임이었는데, 처음엔 단순한 취미처럼 시작했습니다.
하지만 경쟁이 붙고, 장비 차이가 생기면서 저도 모르게 과금의 늪에 빠져들었습니다.
“이번만”, “다음엔 안 해야지”를 수도 없이 되뇌었지만,
결국 현금으로만 1억 5천만 원 이상을 게임에 쏟아붓게 되었습니다.
돌이켜보면 현실의 외로움을 그 안에서 잊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.
💳 대출, 카드 돌려막기… 악순환의 시작
문제는 게임에서 깨어난 뒤였습니다.
카드값이 한두 달 밀리기 시작하더니, 그걸 막기 위해 대출을 받고,
그 대출을 다시 다른 카드로 돌려막기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.
그때는 ‘이 정도는 금방 갚을 수 있겠지’라는 안일한 생각이 컸습니다.
하지만 이자와 수수료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, 매달 월급이 들어와도 숨이 막혔습니다.
그러던 중 작년 12월, 제게 결정적인 일이 생겼습니다.
7살 딸아이가 갑자기 열이 오르며 입원하게 되었고, 병원비 400만 원을 카드로 결제했습니다.
그게 마지막 카드 결제였습니다.
그 이후부터는 모든 게 연체로 돌아섰습니다.
⚖️ 개인회생을 결심하다
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,
우연히 ‘개인회생 후기’ 글들을 읽게 되었습니다.
“나도 이렇게 살 수 있겠구나” 하는 희망이 생기더군요.
2025년 1월 3일, 대전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했습니다.
간단한 통화 후 바로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.
수임료는 216만 원, 5회 분납 조건이었어요.
퇴근 후 밤 7시에 서류를 시작해서 다음날 오후 5시에야 마쳤습니다.
통장 거래내역, 급여명세서, 보험, 예상퇴직금 등 정말 끝이 없었죠.
정신적으로 지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,
‘이제라도 정리하자’는 마음 하나로 버텼습니다.
📅 실제 진행 과정 요약
- 1월 19일 부채증명서 발급 완료
- 1월 24일 금지명령 (이 시점부터 추심 전화 완전히 차단)
- 1월 23일 회생위원 선임
- 3월 5일 1차 보정명령
- 4월 11일 보정서 제출 완료
- 4월 29일 개시결정 확정 + 변제금 1회차 납부
현재는 매달 약 99만 원씩 36개월(3년) 동안 변제 중입니다.
총 채무는 8,500만 원,
월 평균소득은 379만 원,
**변제율은 약 42%**로 확정되었습니다.
부모님 집에 무상으로 살고 있지만,
아버지 병원비를 도와드리기 위해 매달 100만 원씩 입금했던 내역은
‘가족 간 유상거주’로 인정되어 생계비 일부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.
💭 회생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
처음엔 ‘진술서’를 쓰는 게 제일 부담스러웠습니다.
게임, 사치, 돌려막기 같은 단어를 직접 적는 게 너무 부끄러웠거든요.
하지만 변호사님이 “감정적으로 쓰지 말고, 사실만 정확하게 적으세요”라고 하셔서
담담하게 10줄 정도로 정리했습니다.
그때 느꼈습니다. “도망치지 말고 인정하는 게 시작이구나.”
또 하나 힘들었던 건,
서류를 준비하면서 제 소비 기록을 직접 다시 보는 일이었습니다.
결제 내역 하나하나가 제 부끄러운 선택의 흔적이었으니까요.
💡 회생 이후 달라진 점
지금은 한 달에 100~150만 원으로도 충분히 생활하고 있습니다.
예전엔 한 달에 300~400만 원은 써야 숨통이 트였는데,
지금은 꼭 필요한 것만 쓰니 마음이 오히려 편안합니다.
올해 9월에는 진급이 되어 월급이 약 80만 원 상승했습니다.
그 덕분에 변제도 무리 없이 진행 중이고,
앞으로 3년만 버티면 정말 ‘빚 없는 삶’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
매일 아침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.
🌱 마무리하며 – “빚보다 무서운 건 포기였습니다.”
처음 회생을 결심했을 때, 정말 두려웠습니다.
‘회사에서 알게 되면 어쩌지?’ ‘부모님께 뭐라 설명하지?’
그런 생각들 때문에 몇 달을 미루다가 더 큰 빚이 쌓였습니다.
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,
그때 시작했더라면 더 빨리 자유로워졌을 거예요.
회생은 결코 실패의 표시가 아니라,
“다시 서기 위한 제도”입니다.
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
저처럼 카드값, 대출이 감당이 안 되어 숨이 막히는 분이 있다면
꼭 말씀드리고 싶어요.
👉 “망설이지 말고, 상담부터 받으세요.”
후회보다 무서운 건 포기입니다.
저도 여전히 변제 중이지만,
이제는 제 인생의 주도권을 다시 찾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.
